재건축·재개발 조합 비리 문제는 심심찮게 터지는 주택시장의 골칫거리다. 조합방식은 구성원들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건설사와 결탁해 뒷돈이 오가는 일이 벌어지기 쉬운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조합방식 대신 자금 관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신탁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신탁방식을 통한 정비사업 추진사례가 없어 표준화된 사업구조가 없다는 점과 지지부진한 소규모 사업장을 수주했을 경우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점은 우려스럽다는 분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자산신탁은 서울 은평 역촌1구역 재건축 조합과 신탁방식 개발을 두고 협의 중에 있다. 이 사업장은 지난 6월 조합장 양모씨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업체에 10억원을 요구해 2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알려진 곳이다.

지난 12일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총 9510가구)의 재건축 사업장인 송파구 '가락시영'(헬리오시티)의 조합장 김 모씨가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브로커를 끼고 협력업체로부터 2억원 가량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이처럼 조합장은 이해관계와 선호가 제각각인 조합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권이 개입돼 있다 보니 온갖 부정선거와 이에 따른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것도 현실이다. 

실제 이달 초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11개 구역의 재개발·재건축 조합 500여 곳을 대상으로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도시정비법 등 규정 위반으로 130건이 적발됐다.

신탁사 주도의 정비사업은 토지신탁 형태로 이뤄진다. 조합원들이 협의를 거쳐 땅을 신탁하면 신탁사가 시행자가 돼 초반부터 사업비를 투입하고 시공사 선정부터 일반분양까지 맡는다. 조합분양 물량이 확보돼 있는 데다 토지매입이 필요 없어 안정적인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투명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 신탁사가 전체 자금 관리를 도맡고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의 문제는 모두 조합과 시공사, 협력업체간의 유착에서 불거진다"며 "조합 대신 자금력 있는 신탁사가 추진하게 되면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에 공공성 있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건설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정비사업에 신탁사들이 끼어들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자금 부족에 사업이 지지부진한 500가구 내외의 중소사업장이 주 공략대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소규모 사업장은 대개 장기간 사업지연으로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돼 사업성이 훼손된 경우가 많다. 관리처분단계에서 조합원들이 내야할 부담금으로 원활한 합의가 어려울 수도 있고 일반분양분의 분양가도 높게 책정해 미분양 발생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신탁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경험이 없어 노하우가 쌓이기 전까지 무작정 수주를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각종 사업비 리스크와 청산금, 미분양 등 모든 위험을 신탁사가 져야 하기 때문에 사전 사업성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